김창희 교수의 생각과 여러 고민에 대한 공유와 기록
이 세상에 정말 여러가지 좋은 직업이 많겠지만, 나는 내 직업을 지나치게 사랑한다.
학생들에게 면담을 할 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하나 꼽으라면 '아직 제 적성을 찾지 못했다'거나, '적성을 살리고 싶다' 등, '적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적성을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 또는 그와 같은 소질이나 성격'으로 정의하고 있고, 적성과 늘 따라오는 단어인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는 늘 정의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적성과 직업은 가장 큰 그 예다.
소질이 뛰어나서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남들보다 운동 신경이 뛰어나 운동 선수가 될 수도 있고, 미술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화가가 될 수도 있으며, 음악에 조예가 깊어 작곡가나 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정말 소수에게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학생들은 너무나 늦게 깨닫는 것 같다.
나는 직업을 구하기 위한 적성을 '버티는 힘'으로 재정의하고 싶다. 실제 직업의 정의를 보면, 그 시작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가 따라온다. 한 마디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내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난 학생들에게 적성을 찾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 즐겁게 들은 과목, 좋았던 교수님, 감명을 받은 책이나 영화 등은 물어보지 않는다.
내가 주로 면담 때 물어보는 것은, 모두가 힘들어하는 팀플이나, 인턴 경험, 군대 생활 등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주변 동료가 '엄살'을 부리거나 속칭 '오버'를 한다고 느껴진 적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생각이 잠깐이라도 들었던 적이 있다면, 그게 적성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내가 좋아하던 것도 생계를 위한 일이 되고 나면 더 이상 즐거워지기 어렵다. 그리고 내가 재밌었던 과목이나 좋았던 교수님, 좋아하는 일 등은 유튜브 쇼츠보기, 재미있는 사례 수업, 혹은 아주 유머러스한 교수님 등, 나를 제외하고도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거나 좋아했던 일일 것이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어렵게 생각하는(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영업 직무가 있다. 실제로 IPP나 인턴 등을 다녀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아까 물어본다는 질문(주변 동료가 '엄살'을 부리거나 속칭 '오버'를 한다고 느껴진 적이 있는지)을 묻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면 버텨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학생의 적성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덜 힘들어하는, 버티는 힘이 바로 그 학생의 그 일에 대한 적성인 것이다.
그럼 간혹 학생들이 나에게 묻는다. 논문에 프로젝트, 수업, 책 쓰기, 그리고 평소에 하는 일이 엄청 많은 것 같아 보이는 내가 힘들지 않냐고 말이다. 거기에 나는 늘 대답해 준다. '진짜 정말 너무 재미있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다시 태어나도 내가 이 직업을 택하고 싶은 이유다.
예전에 어떤 교수가 말했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데, 돈과 명예까지 준다.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겠는가?' 나도 정확히 같은 생각이다.
이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건 대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참 다양한 학생들이 있고, 저마다 원하는 바와 바라는 것이 모두 다르다.
내가 첫 강의를 시작한 2014년 무렵에 나는 강의평가 4.7/5.0을 받고 기고만장했다. 5.0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5.0 만점을 받기 위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강의평은 모두 개선하고자 애썼다. 그런 내 노력 덕인지, 강의평가는 4.94/5.0까지 올라갔고, 나는 계속해서 사소한 의견까지 모두 반영하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교수님 말이 너무 빠릅니다. 필기를 다 못하고 늘 넘어가요.'라는 강의평을 보고 그 다음 학기에는 아주 천천히 강의를 해 보려고 했었다.
결과가 예상되는가? 놀랍게도 그 학기의 강의평은 4.5로 곤두박질쳤고, 강의평에는 '말이 너무 느리다.', '강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등의 부정적 평가가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 잘못된 것은 고치는 게 맞다.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 있고, 개인의 취향을 타는 것이 있다. 그 뒤로도 '강의가 너무 어렵다'는 강의평에 강의를 조금 더 쉽게 했다가, '강의가 너무 쉽다'는 강의평도 받아보았다. 심지어는 이러닝(E-learning)으로 운영하는 동영상 강의에도 강의가 어렵다, 쉽다, 속도가 빠르다, 느리다 등의 개인의 강의평이 엇갈렸다.
그러던 중, 나는 내가 '소신'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했던가, 나는 멍청해지지 않기로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소신을 가져보기로 했다. 예를 들자면, 수업 모니터링은 하되, 모든 강의평을 개선의 대상으로 삼기 보다는, 최소한 2개 학기 이상 반복해서 나올 것, 전체 수강생의 10% 이상이 문제라고 느낄 것 등의 기준을 스스로 정해두고 수업 방식을 바꾸어 보고자 했다.
그리고 대학원생들과 학부연구생들도 함께 지도하다 보니, 학생들마다 성향이 달랐다. 먼저 학부 수업에서는 나와 맞지 않는 학생들도 당연히 잘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지만, 우리 연구실 학생들은 선발부터 지도까지 모두 내 권한 하에 있다 보니, 우선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학생들로 선발하고자 노력하였다. 물론 내 선발 기준은 언제나 그렇듯 '열정'이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좋아하고, 가까이 두고 싶어한다. 이는 연구실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열정적인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명확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차피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들이기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간혹 걸음이 느린 학생들이 있지만, 그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연락하고 관리하려 한다.
열정이 부족하면? 참 어렵다. 열정이 없다는 것은 의욕이 없다는 것인데, 나는 의욕이 없는 학생들은 가르칠 자신이 아직은 없다. 이건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장에 대한 욕심이 많은 학생들이 좋다.
유사한 직종에 근무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조금 곤란할 때가 있다. 바로 일반적으로 인사치레(?)로 하는 '주로 어떤 연구를 하느냐?'와 같은 류의 질문인데, 보통 이 질문에 다들 어느 산업을 연구한다거나, 현상을 연구한다는 답을 많이 할 때가 있다. 이 때가 내가 가장 곤란한 때이다.
내가 지금까지 수행한 연구나 프로젝트를 보면 알겠지만, 첫 시작은 국방 산업이었으며, 박사 학위는 호텔 산업을 연구했고, 지역 화폐, 커피전문점, 자동차 산업, SNS, 스포츠(축구, 아시안게임), 물류 및 항만 등 너무 다양했고, 최근에는 PC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니 이건 뭐 전문 분야가 없다고 누군가 지적해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어떤 용역(프로젝트)들을 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LNG 냉열 이용 물류 센터 구축 타당성을 연구했다가, 대한항공의 경영 사례를 개발했다가, LG화학의 공장을 평가하는 모델을 만들고, 군수품의 품질 조사 기법을 만들고, ESG 용역도 한 데다가, 삼성전자의 써머노트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고, PCSI 모델도 건드렸다가, 유플러스의 리모컨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품질 지표를 만들고, 최근에는 인천공항 활성화를 위한 환승관광객 연구와 전세사기 보드게임을 만드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수자원공사의 댐 지역활성화사업 효과 측정까지 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 만나는 분들께 들려주면, 저걸 어떻게 한 사람이 했다고 할 수 있느냐, 참여 연구원으로 기여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데, 놀랍게도 방금 언급한 모든 프로젝트들은 내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프로젝트 제안서부터 최종 보고서까지 모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내 홈페이지의 첫 문구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We measure and study productivity across all fields."라는 문구를 적었다. 그리고 연구실 이름을 정할 때도 효율성 연구실이라고 할지, 생산성 연구실이라고 할 지도 참 많은 고민이 있었다. 실제로 효율성(efficiency) 연구를 하긴 하지만, 결국 효율성은 사용한 자원(시간, 비용, 에너지 등)을 얼마나 최소화하고 최적화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생산성은 주어진 투입 자원 대비 얼마나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느냐, 즉 산출량의 크기(양)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내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산성(얼마나 많이 생산했는지)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효율성의 초점은 자원 최소화이고, 생산성은 산출 최대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기는 하다.)
앞으로도 효율성을 바탕으로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는 나와 나의 연구실이 되길 바란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주제가 1번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도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파트라 섣불리 시작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을 먼저 서두에 강조하고 싶다.
내 수업을 들은 모든 학생들을 제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정의는 옳지 않은 것 같다. 내 전공에서 다루는 Service concept라는 용어가, 기업이나 서비스제공자 입장에서만 컨셉을 가져가면 의미가 없고, 소비자와 고객도 그 컨셉을 이해하고 동참해야 하는 것처럼, 제자도 마찬가지다. 나만 그 학생을 제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도 나를 선생이라고 생각해 줘야 사제 관계가 성립하는 것 같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잠깐 수업에서 만났느냐, 아니면 우리 연구실에서 소속되었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학생을 제자라고 생각하는지, 그 학생도 나를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학생들이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많이 가진 않았지만, 예전에 다니던 학교 동창회를 가 보면 다들 번듯한 직업이나 사업을 하고 있었다. 바꿔 생각해 보면, 동창회나 동문회를 나오려고 한 사람이라면 비교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 상 어느 정도 성공해 있어야 자신있게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선생과 제자 관계도 그렇다.
연구실에서 홈 커밍 데이도 하고, 스승의 날이나 내 생일, 혹은 아무 일도 없는 날에 자신의 소식을 전해오는 졸업생들은 늘 너무 반갑다. 하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 제자들의 소식이 궁금해도, 내가 먼저 연락하기는 꺼려진다(빨리 취업 안하냐고 재촉하는, 호구조사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은 몇 번 해 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아직 취업 준비 중이라 부끄러워서 전화를 하지 못했다는 옛 제자들을 보면서, 학생들과 내가 함께 나누었던 추억이나 시간이 어찌되었든, 결국 학생들이 잘 되어야 제자로 레벨업(?)하여 오랜 기간 같이 연락하고 지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늘 안부를 물어봐주고, 가끔 연락을 해 오며, 이직이나 승진 소식을 알리기도 하며, 갑자기 어떤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서 불쑥 전화를 했다고 하는 제자들 모두 너무 사랑스럽고 고맙다. 사실 졸업하고 나면 교수-학생의 다소 수직적인 관계에서 동네 아저씨(?) 정도의 수평적인 관계가 되고, 이제 내가 조언해 주거나 가르쳐 줄 것이 거의 없는데도 이렇게 연락하는 것은 그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본인이 다른 연구실 선후배 들이나, 나와 조금이라도 덜(?) 친했다고 생각을 한다거나, 혹은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나에게 연락을 주저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다면 그냥 오늘 날씨가 좋다거나, 요즘은 뭐하고 지내시냐거나,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용기를 내 주길 바란다.
Every student matters, every moment counts.
규빈이와 규은이가 미국 연구년 때 다닌 Frisco의 Newman Elementary의 슬로건 같은 문장인데, 처음 저 문장을 듣는 순간 가슴에 박혔다. 실제로 내 교육관과 너무나 일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은 소중하고, 매 순간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순간이 더 깊게 와 닿는 순간이 있는데, 홈페이지에도 몇 몇 사진이 있듯이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홈커밍데이가 그런 날이 아닐까 싶다.
취업을 한 선배들과, 취업을 아직 못 한 후배들이 만나 나와 생산성연구실을 매개로 하여 만나는 날에 홀을 가득 메운 학생들을 보자면, 내 새끼들이 이렇게 잘 컸구나.. 하는 생각부터, 나도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구나라는 뿌듯함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오랜만에 보는 앞 기수들을 보면 참 너무나 뿌듯하고 예쁘고, 뒷 기수들은 와 저런 선배님처럼 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더 예쁘다. 그리고 앞 기수들이 이제 취업한 지 수년이 되었다고 제법 직장인, 사회인 티를 내는 것을 보니, 학교에서 찌질하던(?) 역사가 떠올라 우습기도 하다.
너희들이 내 자산이고, 내 명함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정한 기준대로 누가 더 잘 되었고, 못 되었고 하는 건 나에게 의미가 없다.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의미있었고, 너희들 그 자체로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